[더발리볼 = 최병진 기자] 지난 1월 중순, 대한항공의 아시아 쿼터 교체 소식이 전해졌다. 리베로 료헤이(일본)와 이별을 한 뒤 호주 출신의 아웃사이드 히터 이든을 영입했다. 2023-2024시즌 한국전력에서 뛰며 베스트7을 수상한 료헤이는 지난 시즌부터 대한항공의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연이은 부상 변수 속에서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는 우승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정지석과 임재영의 이탈로 인한 ‘난기류’
대한항공은 시즌 초 10연승을 달리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헤난 달 조토 감독의 첫 시즌임에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스쿼드의 힘을 자랑했다. 그 중심에는 ‘캡틴’ 정지석이 있었다. 정지석은 다수의 공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위치하며 절정의 경기력을 자랑했다. 또한 프로 5년차에 ‘커리어 하이’를 바라보는 임재영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임재영은 정한용과 함께 정지석-러셀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번 시즌 12경기 만에 73득점으로 프로 최다 득점(88경기) 경신을 바라봤다.
하지만 연이은 부상이 찾아왔다. 정지석이 지난해 12월 훈련 중 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며 이탈을 하게 됐다. 정지석의 결장 소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임재영도 쓰러졌다. 임재영은 우리카드와 3라운드 경기 중 무릎 반월상 연골판을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에서 연달아 주축 선수가 다치면서 대한항공의 난기류가 시작됐다. 4라운드에서 4연패를 당하며 현대캐피탈에 선두 자리를 내줬고 6경기에서 단 1승에 그쳤다.
헤난 감독도 여러 시도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려 했다. 현대캐피탈전에서는 아포짓 스파이커 러셀을 아웃사이드 히터로 기용하면서 임동혁을 선발 출전시켰으나 상대 서브에 리시브가 무너졌다. 그러면서 FA로 영입한 김선호를 스타팅으로 투입했다. 김선호는 OK저축은행전(10득점)과 KB손해보험전(14득점)에서 연달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강점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으나 정지석과 임재영이 제공한 공격의 파괴력에서는 떨어졌다. 결국 대한항공은 KB손해보험전에서 4연패 탈출에 성공했지만 한국전력과 4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또 패했다.
고심 끝에 주전 리베로 료헤이와 이별을 결정한 뒤 이든을 합류시켰다. 정지석이 한국전력전에서 복귀를 했지만 임재영은 시즌 막바지에 복귀를 하더라도 몸 상태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날개 강화를 결정했다. 리시브 4위, 디그 1위, 수비 2위. 료헤이가 수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그럼에도 교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승일이라는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승일은 2022-2023시즌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2023-2024시즌 3경기에 출전했고 다음 시즌에는 12경기를 소화했다. 2023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남자유스배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수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리시브와 수비 능력 모두 뛰어나다. 헤난 감독도 “강승일은 좋은 선수다. 훈련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며 충분히 주전 리베로로 활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강승일은 KB손해보험과 4라운드 경기에서 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고, 리시브 효율 42.8%, 디그 14개를 잡아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감독님이 앞으로도 기회를 준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코 쉽지 않았던 이든의 합류 과정
대한항공은 시즌 중 외국인 선수나 아시아 쿼터 선수 교체를 과감하게 하는 팀이다. 상황에 따라 빠르게 대응을 하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든의 교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최근 V-리그 다수의 팀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시아 쿼터 선수 풀에 대한 한계가 있기에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또한 이미 시즌을 치르고 있어 소속팀이 이적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도 있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2023-2024시즌에 팀에서 활약했던 필리핀 출신의 에스페호의 영입을 추진했으나 TPVL 이스트 파워(대만)가 거부 의사를 보였다. 대한항공은 어느 정도 리시브와 함께 공격을 해줄 수 있는 선수를 찾았고, 최종적으로 이든을 택했다. 이든은 호주 국가대표 출신으로 195cm다. 2024-2025시즌에는 그리스 리그 아틀로스 오레스티아다스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공격과 수비에 걸쳐 준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KB손해보험전에서 교체로 데뷔전을 치렀고, 두 세트를 소화한 가운데 득점은 없었다. 이후 웜엄존에 머물다 우리카드와 5라운드에서 3세트에 교체로 투입돼 1득점을 기록했다.
시즌 중에 합류한 만큼 대한항공은 이든을 ‘백업’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헤난 감독도 “정지석과 정한용이 우리의 아웃사이드 히터 주전이다”며 기본적인 팀 시스템에는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든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주전 세터인 한선수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팀의 플레이 스타일과 V-리그 특징도 파악을 해야 한다. 또한 시즌을 치르고 온 만큼 경기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주전에 대한 부담감은 덜어줬지만 이든이 얼마나 빠르게 팀에 적응하고 날개 한 축을 맡아주는지는 선두 싸움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정한용은 정지석이 빠진 상황에서도 코트를 지키며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시즌 막바지로 향할수록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 이때 이든의 활약이 필요하다. 다행인 부분은 정지석의 컨디션이 빠르게 올라왔다는 점이다. 정지석은 올스타 브레이크 후 진행된 5라운드부터 전반기의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력과 경기에서는 홀로 23점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부상으로 빠져 있었기 때문에 경기를 계속해서 뛴 다른 선수들보다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정지석을 중심으로 정한용과 이든이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불안한 리베로? 곽승석-정의영까지 대기
강승일이 주전 리베로로 나서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흔들리는 시점이 올 수 있다. 경기 경험이 많지 않고 상대도 본격적으로 강승일에 대한 분석을 할 것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 헤난 감독도 위기 상황을 위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강승일을 선발로 기용하면서 곽승석과 정의영을 준비시키고 있다. 곽승석은 베테랑 아웃사이드 히터로 지난 시즌에도 리베로를 소화한 경험이 있다. 최근 공격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리시브와 수비에서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곽승석은 5라운드 한국전력전 4세트에 강승일과 더블 리베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강승일이 3세트에 한국전력의 강한 서브에 흔들리자, 보완을 위해 꺼낸 선택이었다. 또한 이번 시즌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3순위로 입단한 정의영도 대기하고 있다. 정의영은 5라운드 KB손해보험전 3세트와 5세트에 리베로 자리를 소화했다. 헤난 감독도 “곽승석은 경험이 풍부한 선수다. 강승일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곽승석을 기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정의영은 수비 상황에서 퍼포먼스가 좋다”고 했다. 경기 흐름과 강승일의 경기력에 따라 변화를 가져갈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 쿼터 교체는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고 수준의 리베로를 보내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이유에는 더 강력한 날개를 구축해야 선두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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