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발리볼 = 심혜진 기자] 한국 남자 배구에서 최고의 미들블로커를 꼽으라면 ‘배구 대통령’ 신영석의 이름이 바로 떠오른다. 어느덧 나이가 불혹이 됐지만 기량은 여전히 출중하다. 그러나 이제 은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구 인생 막바지를 준비하고 있는 신영석을 만나고 왔다. 보다 색다르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전력이 내세운 슬로건인 ‘Break the Limits, Toward The Top’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그의 배구 인생을 돌아봤다.
신영석은 아직 배가 고프다
“무조건 살아남겠다”
BLOCK 신영석 선수에게 블로킹을 빼놓을 수 없는 기록입니다. 현재 역대 통산 블로킹 1위에 올라 있는데요.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 자부심이 클 듯해요.
예전에는 삶의 전부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저를 살아 숨쉬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한마디로 산소예요. 산소 없으면 죽잖아요(웃음). 속공도 마찬가지지만, 블로킹은 제가 해야 할 역할인 거죠. 또 블로킹이 경기 초반에 나오는 것과 경기 후반에 나오는 건 의미가 달라요. 초반에 나오면 쉽게 갈 수 있고, 마지막 결정적일 때 나오면 세트를 가져올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역할이 작을 수도 있지만 한 점을 위해 존재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20점 이후에 나오는 블로킹은 왜 제가 미들블로커 신영석인지, 저의 존재를 알려주는 득점이라고 볼 수 있죠.
RECORD 정상급 미들블로커답게 여러 최초 기록도 따라왔는데요. 2017-2018시즌 V-리그 역사상 미들블로커 최초 MVP를 수상했죠. 최근에는 1300블로킹도 달성했고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사실 개인 기록에 대해 어렸을 때는 잘 몰랐어요. 그 당시 저는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이 많고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미를 깊게 두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그런 기록들은 평생 따라다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를 잡더라도 의미가 깊습니다. 1400블로킹까지 해보고 싶어요. 얼마 안 남았거든요. (2월 6일 기준 블로킹 1386개를 기록 중이다.)
ENTER 벌써 16시즌째를 소화 중이에요. 통산 498경기를 뛰었어요. 어마어마한 경험이 쌓였을 것 같아요.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500경기가 얼마 안 남았네요? 너무 좋은데요. (한)선수 형이 시즌 초에 500경기 뛰었다는 걸 들었거든요. 그 소식을 듣고 ‘나도 얼마 안 남았네’라는 생각은 했어요. 이번 시즌 마치기 전에 500경기 뛰고 싶었는데 가능하게 되어 기분 좋아요. 체력 관리 비결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자는 거죠. 그런데 잘 자는 게 너무 힘들어요. 흥분된 상태를 가라앉히기엔 시간이 좀 필요해요. 오전 3~4시쯤 자거나 아니면 밤을 새울 때도 있어요. 최대한 숙면을 취해 보려고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걸 잘 챙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비타민, 보약, 장어 등 몸에 좋은 걸 많이 먹습니다.
AMATEUR 신영석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은 어땠나요.
어렸을 때 배구를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공부가 더 싫었어요(웃음).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가만히 앉아서 뭘 하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죠. 그래서 부모님께서 ‘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하셨어요. 최대한 다치지 않는 종목 중에 고르셨고, 키가 크니깐 배구를 시키셨죠.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어요. 억지로 시켜서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눈을 뜬 거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배구라도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배구로 프로에 가고 싶다는 꿈이 생기면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실력은 없는데 키가 크고 유망주라는 이유만으로 청소년 대표팀에도 들어갔어요. 운이 좋았죠. 그때 시야가 넓어지고 대학교 진학 후엔 경기대 3총사로 불리게 되면서 저의 배구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도 가 보고, 대학교 3학년 때는 첫 시니어 대표팀에도 들어갔어요. 대표팀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신영석은 없었을 겁니다. (대표팀 시절이 터닝 포인트가 된 거네요.) 그렇죠.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기까지 2년이 걸렸을 거예요. 쿠바 대회에서 제가 교체로 투입됐어요. 그때 블로킹 3개, 공격 성공률 90%를 기록하면서 기회를 잡게 됐어요. 준비 기간과 독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기회도 잡지 못했을 겁니다. 대표팀에서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아요.
KEY 남자부 순위 싸움이 치열해요. 후반기에 돌입한 시점에서 ‘봄 배구’ 진출을 위한 KEY는 누구인가요?
중위권 싸움에 정말 난리가 났죠. 이렇게 치열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우리카드도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이에요. 1, 2위 빼놓고는 거의 전쟁입니다. 팬분들은 재밌게 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정말 ‘봄 배구’ 꼭 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세터 하승우의 존재가 중요하죠.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 하잖아요. 승우 손끝에 저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봅니다. 후배지만 도와주고, 기대고 싶은 존재죠. 또 저를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TRADE 그야말로 충격적인 두 번의 트레이드였어요. 하나는 상무 시절, 또 하나는 시즌 중 현역 주장의 트레이드. V리그 역사상 최초였을 정도였죠. 지금 돌아보면 어때요.
첫 트레이드는 저에게 거부권이 있다면 거부하고 싶었어요. 팀 동료들을 배신하는 행위였고, 거기에서 나오는 오해가 많았어요. ‘너는 알고 있지 않았냐‘라는 시선이 많았죠. 그런 점들이 정말 가슴 아팠어요.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거든요. 한국전력으로 올 때에는 아내가 많이 울었어요. 그때 당시 제가 몸이 많이 좋지 않았어요. 팀은 리빌딩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으니까요. 제가 몸이라도 괜찮고 팀도 잘나가는 상황에서 트레이드 됐다면 부담이 덜 했을 거예요. 팀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인 데다 주장까지 달고 있었는데 트레이드 돼서 남아 있는 선수들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중간에 그런 어려운 점을 이겨내고 지금의 현대캐피탈이 됐어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좋은 트레이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웃음).
HYUNDAI CAPITAL 신영석 선수에게 현대캐피탈 시절을 빼놓을 수 없죠. 현대캐피탈에서 정규리그 MVP, 우승까지 경험하며 전성기를 보냈어요.
또 다른 신영석을 만들어준 시간이에요. 저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이죠. 우승을 못 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은데, 우승할 수 있다는 건 최고의 경험이죠. 지금도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만큼 제 인생에서는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고, 그 맛을 다시 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죠. 우승했을 당시의 기분은 말로 표현 못 해요. 로또에 당첨된 순간의 2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면 ‘주식이 대박났다’의 두 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PERIENCE 다양한 경험을 했잖아요. 40세에 경험한 올스타전은 어땠어요? 팬투표 6시즌 연속 1위, 세리머니상 수상도 했어요.
올스타전 오프닝에서 ‘8연속 올스타 남자 1위 신영석’입니다라고 소개가 됐는데, 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1위는 항상 좋은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팬분들께서 좋아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많이 보여드리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자 보이즈는 당일 맞춘 거예요. 최민호와는 인연이 많기 때문에 입장할 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사자보이즈 요청이 들어와서 하게 됐죠. 내년에도 팬투표 1위를 한다면 또 한 번 즐길 거리를 보여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하하.
LIVING LEGEND 배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활약 중입니다. 이렇게 오래 뛸 거라 예상했나요?
아니요. 전혀요. 저는 40살에 은퇴하는 게 목표였어요. 1년 더 하게 된 건 팬분들 덕분이에요. 많은 팬분들께서 ‘1년만 더 해주세요’라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저는 제2의 인생을 40살 이후부터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선배들께도 고민을 털어놨는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됐을 때 은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또 둘째가 4살인데, 배구를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아빠가 뛸 수 있는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어요.
INJURY 5라운드는 부상 관리가 중요할 때잖아요. 선수 시절에서 가장 크게 당한 부상이 있었어요?
8년 전일 거예요. 2018년에 처음으로 무릎 수술을 받았어요. 연골이 달아서 구멍이 났죠. 수술로 비시즌에 재활만 했어요. 시즌 들어가서 복귀하긴 했는데, 정상 궤도에 올라가는 데 꽤 걸렸어요. 대표팀에도 가지 못했죠. 그때 당시에도 은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들고 퍼포먼스가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으니 답답하더라고요.
MEMORY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순간이 있다면요.
한국전력에서 첫 플레이오프 승리했을 때요(2023년 3월 23일 현대캐피탈전). 준플레이오프에서 극적으로 플레이오프로 올라갔고, 플레이오프 2차전 5세트를 맞았죠. 상대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우리가 이겼는데, 그때 팬분들의 함성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또 하나는 현대캐피탈에서의 첫 우승. 계양체육관에서 했는데 10년 만의 우승이었어요. 그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챔피언결정전 내내 1시간마다 깼어요. 우승하고 일주일 동안은 하늘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죠. 집에서도 계속 우승 경기만 봤어요. 그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아 또 하나가 있네요. 드림식스 시절 김호철 감독님이 부임하시고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다 기억이 나요. 10연승하고 10연패하고 다시 10연승하고, 아주 난리였죠.
IDOL 신영석 선수가 뽑은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요.
제 포지션인 미들블로커에서 한 명 뽑아볼게요. 저는 고희진 선수로 하겠습니다. 저에게 겸손, 예의, 파이팅을 가르쳐줬고, 배구 인생의 방향을 설계해 주신 분이에요. 따뜻한 말도 많이 해주셨죠. 기록적인 면에서 고희진 감독님을 제가 다 뛰어넘긴 했지만(웃음), 정말 본받을 수 있는 분이에요. 헌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죠.
TEAM 현대캐피탈, 한국전력 모두 훈련장이 좋잖아요. 훈련장 효과를 느끼나요?
어마어마하죠. 훈련장 시설은 경기와 연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너무 만족하고 있습니다. 현대캐피탈 훈련장과 정말 많이 비슷해요. 동선도 선수들의 편의를 최대한 반영했어요.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해주신 거죠.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운동하는 것도 복인 것 같아요.
SHIN YUNG SUK 신영석이 바라본 미들블로커 유망주는 누가 있나요? 미들블로커가 키로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떤 점이 나아져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요?
이상현(우리카드)을 꼽아 봅니다. 꼭 블로킹을 하겠다는 그런 간절함이 보여요. 형들이 있건 없건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그런 욕심도 보이고요. 김준우(삼성화재). 박창성(OK저축은행), 정태준(현대캐피탈)도 잘해요. 정태준은 키도 크고 센스도 있어요. 국제 경험을 많이 하고 체계적인 훈련 받는다면 충분히 아시아에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이 실패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실패를 하면서 배울 수 있죠. 김준우는 키는 작지만 스피드와 센스가 뛰어나요. 지난 시즌 블로킹 1위였잖아요. 그런 점들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TEAMMATE 새롭게 아시아쿼터 선수가 합류했어요. 무사웰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실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게 없어요. 자기만의 자부심, 욕심도 있더라고요. 욕심이라는 게 선수로서 가져야 하는 욕심이 있어요. ‘나한테 올려. 내가 해결할게’라는 욕심이죠. 실패하면 욕을 더 많이 받는, 리스크가 큰 부분인데도 달라고 하죠. 생각이 깊고 프로 마인드가 장착된 선수예요. 한마디로 복덩이죠.
OFFER 영석 선수에게 영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누구를 영입하고 싶어요?
저는 전광인 선수를 데려오고 싶어요. 한국전력 레전드 선수잖아요. 무엇보다 팀을 이끌어가려는 책임감을 높게 평가해요. 배구 센스와 실력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잖아요. 그런 선수와 함께 뛰면 정말 든든할 것 같아요. 서재덕, 전광인, 신영석 셋이서 함께 뛰는 모습을 팬분들께서 많이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요? 전광인이 리턴해서 세 명이서 마무리하는 모습도 멋있을 것 같네요.
WIN 승리의 맛은 항상 최고죠? 팀도 영석 선수도 오랜 시간 우승을 못 했기에 간절할 것 같아요.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의 트레블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 자리엔 없었지만 후배들이 큰 역사를 썼기 때문에 대견스러웠고, 같이 기뻤어요. 올해 우리 팀의 전력을 보면 충분히 우승 가능하다고 봅니다. 선수들과 합심해서 우승을 간절하게 원한다면요.
AWARDS 받고 싶은 상이 있나요?
아직 못 받은 상은 트리플크라운인데 그건 말이 안 되죠(웃음). 챔피언결정전 MVP를 받아보고 싶어요. MVP를 받았다는 것은 우승을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물론 동료들이 받는 게 더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축하받는 것보다 축하하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RETIRED NUMBER 영구 결번을 해도 충분하죠. 어느 팀에서 받고 싶을까요?
제 등번호가 매년 바뀌잖아요. 그 이유도 저를 계속 낭떠러지에 밀고 싶어서 가지고 가는 것들이죠. 사실 영구 결번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만약에 영구 결번이 된다면?) 18번으로 할 것 같아요. 18번으로 시작했었고, 18번으로 끝났죠. 한국전력에 오면서 18번을 달고 있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걸 뺏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1번으로 시작했다가 22번으로 바꾼 뒤 1년마다 올라가고 있죠. 한국전력에서 우승을 한다면 18번으로 여기서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DREAM 신영석 선수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 속에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38살 때쯤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계속 말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런 인터뷰 질문이 나오더라고요. 최종 목표에 대해서요. 그러면서 생각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면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TIME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나요. 그 이유는요. 또는 미래로 간다면요?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요. 비트코인을 살 거예요!(웃음). 이건 장난이고요. 대학생 때로요. 체계적으로 운동과 몸 관리를 해서 국제무대에서 해보지 못했던 거 해보고 싶어요. 약하다는 평가가 계속 나오니깐, 몸 관리 잘하고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한국 배구가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듣지 않게 하고 싶어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 보고 싶네요.
HEART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가족에게 사랑 표현 자주 하세요?
무뚝뚝한 남편이자 아빠죠. 팀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는 집에서 절대 하지 않아요. 그만큼 걱정할 테니까요. 아들에게도 ‘아빠는 끄떡없어. 아빠는 강하니깐 귀신 안 나와’라는 말을 해요. 시즌 때는 저의 시간이니깐 비시즌 때는 아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죠. 충성을 다 합니다(웃음). 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해요. 그 시절에 해줄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어 목마를 태워준다든지, 나이 들어서 태워줄 수는 없으니까요.
END 솔직히 은퇴 생각도 하나요? 은퇴 후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게 있다면요.
저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을 생각이에요. 아마 한국에는 없을 겁니다. 지도자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유소년을 가르치는 건 행복할 것 같아요. 하지만 프로 사령탑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솔직히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가족들과도 더 멀어질 테고요. 가족들과 함께 자유로운 신영석으로 살고 싶습니다.
TODAY 오늘 인터뷰 어땠나요?
항상 식상한 질문 많았는데 새로운 질문과 함께 해서 즐거웠어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ONLY ONE 인터뷰 중 가장 참신한, 재미있었던 질문 하나만 꼽아주세요.
Memory요. 제가 까먹었던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이야기하면서 풋풋해진 것 같아요. 과거 대표팀 시절부터 제가 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니 ‘내가 많이 했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네요.
PLAYOFF 올 시즌 ‘봄 배구’ 향한 각오 한마디 전하면서 인터뷰 마무리할게요.
무조건 살아남겠습니다. 꼭 수원에서 ‘봄 배구’를 하고 싶어요. ‘진달래꽃 필 때까지 배구하자’라는 키워드가 있었거든요. 예전 키워드가 생각이 나네요. 정말 후회 없는 시즌을 만들겠습니다. 생존 서바이벌입니다. 무조건 살아남을게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저작권자ⓒ 더발리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