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발리볼 = 김희수 기자] 배구에서 교체 투입되는 선수들은 보통 둘 중 하나의 임무를 맡는다. 흔들리는 선수를 대신해 들어가 남은 시간 동안 임무를 수행하거나, 딱 한 번의 랠리에서 흐름을 바꾸는 서브 혹은 블로킹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 교체 자원이 있다. 바로 서베로다. 서베로들은 어떤 임무를 맡는 선수들일까. 또 어떤 선수들이 좋은 서베로일까.
서베로란 무엇인가?
서베로란 서브와 리베로의 합성어다. 서브를 구사하고 이후에는 수비에 집중하는 롤이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가장 일반적인 서베로의 플레이 패턴은 우리 팀의 아웃사이드 히터가 서브를 때리는 타이밍에 교체로 들어가 대신 서브를 구사하고, 이후 후위 세 자리(1-6-5번)를 대신 돌면서 수비와 리시브를 커버하는 것이다. 즉 원 포인트 서버와 후위 세 자리 대수비 요원의 롤을 한 선수가 전부 다 수행한다.
좋은 서베로를 보유한 팀은 경기 템포 조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서브 공략으로 상대의 허점을 찌르고, 이후에는 수비 강화로 가드를 단단히 올리면서 반격의 템포를 올릴 수 있다. 특히 전위에서 공격과 높이에는 강점이 있지만 후위공격 옵션이 약하고 수비에 약점이 있는 아웃사이드 히터를 내세우는 팀이라면 서베로를 거의 필수적으로 기용하게 된다.
좋은 서베로가 되려면? 기회를 잘 만들어야 한다
좋은 서베로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서베로에게는 서브와 수비, 리시브에서 강점이 요구된다. 서브는 기본적으로 범실 없이 해야 한다. 서베로는 원 포인트 서버와 다르다. 한 방에 득점을 노리는 스파이크 서브보다는 반격 기회를 창출하는 서브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일반적이다. 대신 코스 공략에 있어서는 정교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 코스 공략 능력이 없는 안정적인 서브는 상대의 사이드 아웃을 도울 뿐이다. 범실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반격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서브를 넣어야 한다. 결국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코스 공략 능력이 필수다.
수비와 리시브에 있어서도 ‘기회 창출’이라는 큰 틀에서 중요하다. 서베로는 수비와 리시브가 불안한 선수를 대신해서 후위 세 자리를 돈다. 능력치에 있어서는 당연히 빠진 선수보다는 좋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단순히 조금 더 나은 수비와 리시브를 선보이는 걸로는 교체 카드 두 장을 소모하는 데에 상응하는 리턴이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수비 위치 선정을 통한 엑설런트 디그와, 안정적인 A패스 제공으로 사이드 아웃 기회 제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비 상황에서 콜 플레이와 2단 연결도 리베로와 함께 주도적으로 해줘야 한다. 요컨대 서베로는 공격을 뺀 모든 부분에서 주도적이고 정교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그래서 많은 팀들이 본 포지션은 리베로지만 주전 리베로가 확고히 있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을 서베로로 기용한다. 이들은 수비와 리시브 상황에서의 주도적이고 정교한 플레이가 이미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선수들의 입장에서도 투 리베로 체제가 아니면 출전 기회가 많지 않은 제2리베로로 있는 것보다는 서베로로 나서면서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쪽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한국전력 장지원, GS칼텍스 유가람이 대표적으로 본업은 리베로지만 서베로로 출전 시간을 확보 중인 사례다.
물론 본업이 리베로가 아닌 아웃사이드 히터인 서베로들도 많다. 이들의 경우 서베로가 대신 들어가는 자리가 아웃사이드 히터의 자리라는 점에서 수비나 리시브 위치 선정 및 동선 설정에서 이점을 가진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아예 후위공격 옵션까지도 열어줄 수 있는 아웃사이드 히터 출신 서베로도 있다. KB손해보험 지은우, 한국도로공사 이예은이 바로 아웃사이드 히터 출신 서베로다.
여자부에 서베로가 많은 이유는?
서베로는 상대적으로 남자부보다 여자부에서 더 활약이 두드러진다.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여자부에서 파이프를 위시한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후위공격 빈도가 훨씬 낮기 때문이다. 파이프가 좋은 아웃사이드 히터는 수비-리시브가 약하거나 서브가 좋지 않아도 후위에서 빼기가 어렵다. 파이프 옵션 하나를 통째로 지우면 팀 공격 작업 전반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 후위로 가든 공격 옵션 네 개를 유효하게 살려놓는 것이 핵심인 현대 배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V-리그 여자부에서는 대부분의 파이프를 외국인 아포짓이 처리한다. 따라서 아웃사이드 히터들을 후위에서 빼는 데에 있어 부담이 덜하다.
두 번째는 여자부가 서브 이후 수비 및 반격이 남자부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남자부는 여자부보다 스파이크 서브와 공격의 평균 강도가 훨씬 높다. 그래서 안정적인 서브보다는 강한 서브 한 방을 노리는 게 더 효율적이고, 상대가 세팅 볼을 때리는 공격을 수비하고 반격한다는 구상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여자부는 강한 서브로 얻는 리턴보다는 범실에 대한 리스크가 훨씬 크고, 상대 공격을 수비해서 반격할 수 있는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다. 정교한 서브와 견고한 수비로 반격 템포를 올릴 수 있는 서베로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V-리그 남녀부 14개 팀을 살펴보면 여자부는 활용하는 서베로만 세 명인 팀도 있고, 한 세트에 서베로를 두 명씩 기용하는 팀까지 있을 정도로 서베로의 활용 폭이 넓다. 반면 남자부는 5라운드를 기준으로 서베로를 주력으로 활용하는 팀은 지은우가 있는 KB손해보험과 장지원이 있는 한국전력 두 팀뿐이라고 봐야 옳다. 현대캐피탈 장아성, 우리카드 김동민, 삼성화재 함형진, OK저축은행 강선규도 서베로 자원으로 볼 수 있지만, 장아성은 주로 서브 없이 후위 수비 요원으로 들어가고 있고 다른 선수들은 투입 빈도 자체가 크지 않다. 남녀부의 파이프 빈도와 중요도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포인트다.
우승에 국가대표까지 경험한 서베로 박수연
새로운 강자 김효임-정솔민
V-리그에 있는 수많은 서베로들 중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경기에서도 ‘신 스틸러’로 자주 나서는 특급 서베로들이 있다. 여자부에서 서베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는 흥국생명 박수연이다. 박수연은 서베로 자리에서 통합우승과 국가대표 승선이라는 엄청난 영광들을 누려본 선수다.
2024년에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흥국생명이 통합우승을 차지한 2024-2025시즌에도 24경기 61세트에 출전해 서브 득점 5개, 리시브 효율 31.25%, 세트당 디그 1.131개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명승부로 회자되는 정관장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전 경기에 출전했고, 서브 득점도 3개를 기록하며 신 스틸러로 존재감을 뽐냈다.
이번 시즌에도 박수연은 요시하라 도모코 감독의 신뢰 하에 꾸준한 기회를 얻고 있다. 28경기 91세트(이하 2월 13일 기준)에 출전하며 이미 지난 시즌의 출전 횟수를 넘어섰고, 서브 득점 8개, 리시브 효율 30.39%, 세트당 디그 0.989개를 기록 중이다. 정윤주-김다은 등 리시브와 수비가 불안한 아웃사이드 히터 자원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GS칼텍스 김효임과 페퍼저축은행 정솔민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새롭게 떠오른 신흥 강자다. 김효임은 GS칼텍스의 2025-2026시즌 최대 히트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라운드 6순위로 팀에 합류했고, 2라운드부터 서베로로 출전 기회를 얻더니 4라운드 현대건설전에서 데뷔 첫 서브 득점과 함께 신들린 수비로 팀을 이끌면서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데뷔 첫 방송사 인터뷰와 언론사 인터뷰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GS칼텍스 이영택 감독은 “훈련을 같이 하면서 보니 리시브도 그렇고 수비도 감각적으로 괜찮다고 보였다. 후위 세 자리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해 기회를 줬는데 잘해주고 있다”며 김효임을 칭찬했고, 김효임은 “팀이 승리를 해 좋다. 3세트 득점도 하고, 좋은 수비도 하고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서브 득점이 나온 후 소리를 질렀다. 데뷔 첫 득점이라는 것을 아니까 기분이 좋았다. 흥분됐다. 도파민이 나오더라”며 신인다운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이 경기 이후에도 김효임은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17경기 54세트에 나서 서브 득점 4개, 리시브 효율 33.33%, 세트당 디그 0.963개를 기록 중이다.
정솔민 역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V-리그 데뷔전이었던 1라운드 현대건설전에서 서브 범실을 저지르며 아쉬운 출발을 알렸지만, 당시에도 장소연 감독은 “대범한 (정)솔민이라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투입해봤다. 서브 범실이 나오긴 했지만 사이드 아웃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이미 상정해 뒀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신인이지만 앞으로도 찾아오는 기회를 잡고 좋은 활약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정솔민에 대한 신뢰를 이어갔다.
그리고 정솔민은 그 신뢰에 보답했다. 센스와 예측이 돋보이는 김효임과는 또 다른, 폭발적인 반응속도와 스피드로 승부하는 스타일로 전하리와 함께 서베로 롤을 맡고 있다. 특히 페퍼저축은행이 지긋지긋한 9연패를 끊던 3라운드 GS칼텍스전 4세트에 보여준 3연속 엑설런트 디그는 현장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을 정도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해당 경기 후 장 감독은 “순발력과 반응 속도가 워낙 좋은 선수다. 프로에 오고 나서 쓰는 볼도 달라지고, 외국인 선수들을 처음 상대하다 보니 적응 시간이 좀 필요했을 뿐이다. 훈련으로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졌고, 분명 필요한 순간이 오겠다 싶어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들어가서 제 임무를 해주는 걸 보고 역시 솔민이는 앞으로도 활용 가능한 자원이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기회를 주고 싶다”며 정솔민을 치켜세웠다.
GS칼텍스의 이른 시점 서베로 투입과
투 서베로 기용
끝으로 GS칼텍스의 독특한 변칙 서베로 활용법을 살펴보자. 일반적인 서베로의 투입 타이밍은 경기 중반 혹은 후반이다. 리시브-수비에 약점이 있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경기의 흐름을 정할 수 있는 중후반 클러치 타이밍에 약점을 노출해 경기가 넘어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서베로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GS칼텍스는 조금 다르다. 첫 번째 테크니컬 타임아웃에도 들어가기 전부터 김효임과 유가람이라는 팀의 주력 서베로들을 거침없이 활용한다. 레이나나 권민지가 초반부터 흔들리면서 경기 분위기가 일찌감치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즉 중후반 클러치 상황이 오기도 전에 리시브가 무너지고 일찌감치 게임 플랜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또한 GS칼텍스는 김효임과 유가람이라는 두 명의 서베로 카드를 한 세트에 같이 활용하기도 한다. 주로 레이나-권민지가 듀오로 나섰던 때에는 두 선수가 한 명의 아웃사이드 히터씩을 맡아 교대했지만, 굳이 서베로로 대체해 줄 필요가 없는 유서연이 나서는 최근에는 두 선수 중 한 명이 아웃사이드 히터, 한 명이 미들블로커와 교대하는 식으로 코트에 나서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미들블로커는 서브 후 리베로와 교대돼 세 자리를 쉬지만, 이 경우는 리베로 대신 유가람이나 김효임이 미들블로커의 후위 세 자리를 들어갈 수도 있다. 실제로 2월 2일 IBK기업은행전에서는 한 번의 랠리뿐이긴 했지만 유가람이 권민지를 대신하는 사이 김효임도 최가은을 대신해 서브 라인에 서면서 선수가 동시에 코트를 밟기도 했다. 걸출한 두 명의 서베로를 보유한 GS칼텍스이기에 가능한 선수 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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