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발리볼 = 김희수 기자] 이사나예 라미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민다. 네덜란드와의 평가전과 2025 아시아배구연맹(AVC) 남자 네이션스컵에 참가해 컨디션을 점검 한 라미레스호 앞에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국제배구연맹 (FIVB) 남자 세계선수권이 다가왔다. 9월 필리핀에서 치러질 세 계선수권에서 한국 남자배구는 그들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을 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네덜란드와 나눠 가진 1승 1패
그 속에서 확인한 것들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은 6월 6일과 7일 양일 간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진행됐다. 대한배 구협회는 네이션스컵과 세계선수권을 앞둔 대 표팀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팀 전술 점 검 및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평가전을 기획 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적도 있고 (1996 애틀랜타), 세계 랭킹도 한국보다 높 은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은 네이션스컵-세계 선수권의 전초전으로 적합했다. 무엇보다 피 지컬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팀을 상대하는 경 험을 쌓아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양 팀은 100%의 전력을 가동하지는 않 았다. 네덜란드는 에이스 니미르 압델-아지즈 가 제외된 1.5군 정도의 로스터로 한국을 찾았 다. 베셀 키밍크(S)-베니 튄스트라-톰 쿱스 (이상 OH)-루크 반 더 엔트-파비안 플락(이 상 MB) 정도가 기존의 1군 멤버로 볼 수 있었 는데, 이 중에서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던 플락은 웜업존을 지켰다. 한국도 마 찬가지였다. KB손해보험의 핵심 임성진-황택 의-나경복과 공수겸장 정지석이 모두 크고 작 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 네덜란드와 두 차례 경기에서 1승씩을 나눠 가지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한국이 드러낸 최대 약점은 아웃사이드 히터 쪽에서의 리시브 밸런스 붕 괴였다. 아웃사이드 히터 자원 중 리시브가 좋 은 정지석과 임성진이 코트에 나설 수 없었고, 나머지 아웃사이드 히터들은 모두 공격에 특 화된 자원이다 보니 박경민의 부담이 커졌다. 여기에 박경민의 컨디션도 완벽하지 않았던 탓에 연속 실점이 걷잡을 수 없이 계속되는 장 면들도 나왔다. 상대의 피지컬이 좋았기 때문 에 더더욱 C패스 상황에서 하이 볼 공략 난이 도가 너무 높았다.
물론 리시브만 탓할 수는 없었다. 연결과 커버 에서도 흔들리는 상황이 많아서 수습이 더 어 려웠다. 다행히 2일차 경기에서는 임동혁과 허수봉이 공격에서 결정력을 끌어올리면서 부 담이 커졌다. 다만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하차 한 임성진의 대체 자원이 기존 자원들과 역할 중복에 가까운 공격형 아웃사이드 히터 홍동 선이라는 점은 네이션스컵에서의 리시브 밸런 스에 대한 걱정을 더욱 키웠다.
세터 쪽에서도 변수가 있었다. 주전 황택의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며 한태준이 주전 자리 를 차지했다. 리그에서 두 시즌 내내 주전으 로 나섰던 한태준인 만큼 갑작스러운 주전 출 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무난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특히 팀의 주포인 임동혁과의 호흡 이 계속 좋아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 긍정적이 다. 상술한 리시브 밸런스 문제로 인해 지나치 게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을 감안하면 합격점을 줄 만했다. 우리카드에 서는 이상현과의 속공 콤비를 통해 경기를 원 하는 대로 풀어갔던 한태준은 이제 대표팀에 서도 같은 승리 패턴을 구사하기 위해 속공수 들과의 호흡을 더욱 가다듬어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미들블로커 쪽에서는 차영석-최준혁이 ‘빅 앤 스몰’ 조합으로 선발 출전했다. 최준혁은 성 인 대표팀 첫 합류였던 지난해보다 한결 안정 적인 경기력을 펼쳤다. 서브에서 리그 때만큼 의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한 것 정도가 약간 의 아쉬움이었다. 차영석은 소속팀에서 호흡 을 맞춰온 황택의가 빠지면서 공격 리듬을 완 벽하게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하고 배구 센스가 좋은 선수인 만큼 시간 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전했다.
임동혁은 1일차에 비해 2일차 경기력이 좋았 던 것이 긍정적이었다. 다만 체중이 줄어들면 서 근육량도 줄어든 탓인지 공격력이 가장 좋 았을 때에 비해서는 떨어진 느낌을 줬다. 네이 션스컵 전까지 몸을 잘 만들면서 파워를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남겼다. 신호진은 출전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았으나 공격 컨디션 이 아직 100%는 아니었다. 신호진은 리시브 밸런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카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전반적인 감각을 끌어올려 야 했다.
바레인으로 향한 라미레스호
네이션스컵에서 확인한 것들
네덜란드와 평가전으로 컨디션을 점검한 라미 레스호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6월 17일부터 치러질 AVC 남자 네이션스컵에 참가하기 위 해 바레인으로 향했다. 뉴질랜드-베트남과 함 께 D조에 속한 한국은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 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과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초반 집중력 회복이다.
첫 경기였던 뉴질랜드전은 전력상 확실한 우 위에 있었음에도 1세트를 내주며 최악의 흐름 으로 갈 뻔했다. 초반부터 집중력을 끌어올렸 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실점 상황이 너무 많았고, 반격 결정력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김 지한-허수봉의 리시브 라인도 여전히 약점을 드러내며 상대의 공략점이 됐다. 급기야 포지 션 폴트까지 저지르는 등 20점대 초반까지 끌 려다녔다. 막바지에 상대의 범실이 급증한 틈 을 타 임동혁과 허수봉의 공격력으로 가까스 로 승부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후의 경기 양 상은 무난했다. 다잡은 1세트를 놓치며 맥이 빠진 뉴질랜드는 자멸했고, 한국은 공격력의 우위를 시종일관 살리며 3-0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두 번째 경기였던 베트남전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베트남도 뉴질랜드와 마찬 가지로 한국에 비해 체급 자체가 떨어지는 팀 이다. 그러나 또 한 번 고난의 1세트를 치러야 했다. 두 명의 왼손잡이 공격수 콴 트롱 느기아 와 반 쿠옥 두이 응우옌을 동시에 기용하는 베 트남의 변칙적인 라인업이 한국을 흔들었고, 생소함에 당황한 한국의 리시브-수비 라인이 크게 흔들리며 또 다시 5점 차 열세에 놓였다. 이번에도 극복 과정은 공격력의 우위를 살리 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허수봉-김지한-임동 혁이 돌아가며 맹공을 벌였고, 베트남이 가져 온 또 하나의 변칙 패턴인 이동공격을 김지한 이 블로킹으로 봉쇄하기도 했다. 왼손잡이 두 명이 뛰는 라인업에도 어느 정도 적응한 한국 은 또 한 번 한 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1세트를 가져갔다. 이후 과정도 비슷했다. 추격 의지를 잃은 베트남을 체급의 이점을 살려 밀어붙여 쓰러뜨렸다.
예선 두 경기에서 나타난 1세트 초반의 집중력 부재는 한국이 앞으로의 중요한 경기들을 치 르기 위해 반드시 피드백해야 할 부분으로 남 았다. 앞으로 만날 상대들은 뉴질랜드-베트남 보다 체급도 더 좋고, 국제전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초반 집중력 부재로 리드를 뺏기면 역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세계선수권에서 같은 조가 된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초반 리드를 내주면 참 사에 가까운 스코어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 팀들은 한국 정도 레벨의 팀을 상대할 때 앞서 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범실로 추격의 빌 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수를 역이용 해 브레이크를 노리는 전략을 쓸 수 없다. 반드 시 첫 8점을 무난한 사이드 아웃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다행히 호주와의 8강전에서 한국의 1세트 초 반 집중력은 어느 정도 나아진 모습이었다. 반 격 과정에서 임동혁이 힘을 낸 것이 결정적이 었다. 호주의 자잘한 범실로 인해 사이드 아웃 상황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앞선 두 팀보다 피지컬에서는 확실한 강점이 있는 호 주를 상대로 오히려 더 좋은 초반 경기력을 보 여준 것은 고무적이다.
선수단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는 베트남전부터 미들블로커 조합이 차영석-이상현으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이는 두 가지의 이점을 가져다 주는데, 먼저 황택의가 여전히 부상으로 코트 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주전의 중책을 맡게 된 한태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우리카드 에서부터 꾸준히 맞춰온 한태준과 이상현의 B 속공 콤비네이션은 V-리그 최고의 공격 옵션 중 하나기 때문이다. 또한 최준혁에 비해 국제 전 경험이 풍부한 이상현이 주전 자리에서 큰 경기에서의 보다 여유로운 플레이를 펼치고, 서브와 높이를 갖춘 최준혁은 전-후위에 상황에 맞게 교체 투입되는 방식으로 선수단 운용 에 유연성을 더해줄 수 있다.
그러나 바레인과의 준결승에서 한국은 상대의 클러치 블로킹 능력에 짓눌리며 2-3 패배를 당했다. 이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이 볼 상황에서 때에 따른 적절한 대처 능력을 키 워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임동혁과 허수봉은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 비 해 훨씬 경기력이 올라온 모습이었다. 한태준 과의 호흡이 확실히 좋아진 임동혁은 꾸준히 팀의 공격 1옵션 역할을 수행했고, 허수봉은 호주와의 8강전 3세트 22-23에서 폭발적인 클러치 결정력으로 3연속 득점을 터뜨리며 날 아올랐다. 과거 아포짓 경쟁자에서 공존하는 좌우 쌍포로 변신에 성공한 두 선수의 공격력 은 국제대회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수준이다.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의 승리를 이끌 중요한 열쇠다.
김지한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었다. V-리그 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하이 볼 결정력과 위협적인 사이드 블로킹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의 평가전부 터 문제였던 불안한 리시브는 역시나 발목을 잡았다. 만약 서브 공략이 훨씬 더 날카로워질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김지한이 선발로 나서게 된다면, 리시브 범위를 조절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9월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이번 국제대회 시즌에서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세계선수권이다. 무려 11년 만 에 복귀하는 세계선수권에서 프랑스-아르헨 티나-핀란드와 함께 C조에 속한 한국은 객관 적으로 봤을 때 조 내 최약체다. 그러나 랭킹 포인트 확보와 국제 경쟁력 증명을 위해 반드 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 해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부상자들의 무사 복귀가 가장 시급한 과 제다. 특히 불안한 리시브를 잡아줄 수 있는 정 지석과 임성진의 복귀가 절실하다. 또한 나경 복과 황택의의 복귀 역시 공격-경기 운영-서 브-사이드 블로킹까지 수많은 요소를 강화해 줄 수 있는 복귀가 될 것이기에 착실히 준비돼야 한다. 복귀만큼 추가 부상자 발생의 예방도 중요하다. 훈련 과정에서의 집중력을 잘 유지 하면서 발목-어깨 등에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부상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사이드 아웃 결정 력 향상이다. 어느 팀을 상대로도 피지컬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우 리에게 브레이크 기회는 그리 많이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이드 아웃 결정력을 끌어올 리지 못하면 경기 내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압도당하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사이드 아웃 결정력 증가의 열쇠는 A패스 비 중을 끌어올리는 것과 세터의 배드 리시브 커 버 능력 확보다. A패스는 정지석과 임성진의 복귀가 이뤄진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 기에 배드 리시브 커버를 다듬는 것이 훈련 과 정에서의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강서버가 즐 비한 프랑스를 상대로 언제나 A패스를 기대할 수는 없기에 황택의-한태준-김주영의 배드 리시브 커버 능력은 이변을 일으키기 위한 필 수 조건이다. 이 두 가지 선결과제가 잘 풀리면 사이드 아웃의 핵심 중 하나인 공격 옵션의 다 양화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라미레스 감독 개인에게 주어질 과제는 베스 트 7과 교체 선수 활용 방안을 명확히 정하는 것이다. 상술한 차영석-김지한의 리스크를 세 계선수권에서도 감수할 것인지 혹은 다른 방 식을 구상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네이션 스컵까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 선수들 을 엔트리에 그대로 넣고 갈 것인지도 판단해 야 한다. 김주영-신호진 더블 스위치의 효용 성에 대해서도 검토해봐야 하고, 황택의가 복 귀할 시 주전 세터를 누구로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이처럼 라미레스호는 필리핀으로 향하기 전까 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다행히 시간은 아직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두 달여의 시간 동 안 쌓여있는 과제들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느 냐에 따라 세계선수권에서 라미레스호의 성적 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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